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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몇 장 들고 무작정 찾아갔던 에이전시 사무실

처음 문을 두드렸던 그날의 어색함

무작정 프로필 사진 몇 장을 출력해서 강남 어딘가에 있던 배우 에이전시 문을 두드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게 제일 빠른 길인 줄 알았다. 웹사이트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무턱대고 찾아갔는데, 막상 가보니 문은 잠겨 있었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직원처럼 보이는 분이 나와서 서류만 툭 받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아, 이게 시스템이라는 거구나’ 싶으면서도 묘하게 씁쓸했다. 한예종 연기과 나온 친구들이나 아카데미 다니는 사람들은 이미 루트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종이 한 장 남기는 게 전부인가 싶어서 말이다.

캐스팅의 보이지 않는 벽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곳들은 이미 소속된 배우들이나 현장에서 검증된 사람들 위주로 먼저 돌아가더라. 비공개 오디션이라는 게 참 그렇다. 제작사에서 공고를 올리기도 전에 에이전시나 아는 교수님들을 통해 이미 라인업이 어느 정도 정해진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 기사에서 김준수 씨 소속사에서 외주 프로듀서 관련해서 공식 입장 내는 걸 봤는데, 거기서도 퍼블리싱 에이전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며 참 복잡한 생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나 협업 영화 ‘제주 올레’ 같은 게 기획될 때도 보면 다들 이미 연결된 글로벌 에이전시 라인을 타는 것 같고. 그런 거 보면 순수하게 열정만으로 시작하는 게 얼마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지 가끔 무력감이 든다.

사진 한 장에 담긴 비싼 기회비용

처음 프로필 촬영을 할 때 스튜디오 예약하고 메이크업까지 받느라 30만 원 정도 깨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지만, 당시엔 그게 내 유일한 무기였다. 이수혁 같은 배우들이 초기엔 에이전시 없이 직접 발로 뛰었다는 무용담을 듣고 나도 따라 해 보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디자이너들한테 직접 프로필을 돌리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사실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라 자존감만 엄청 깎아 먹었다. 차라리 취미로 연기학원이라도 제대로 다녀서 인맥이라도 넓히는 게 나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오디션장 밖에서 느끼는 거리감

가끔 모델 오디션이나 대회 같은 거 공고 뜨면 기웃거려 보는데, 막상 가보면 일본 모델 에이전시 쪽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다들 기가 죽을 정도로 체격 조건들이 좋더라. 나는 연기를 하고 싶은 건데, 자꾸 외적인 조건만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서 현타가 올 때가 많다. 특히나 요즘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곧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인도 톱스타가 출연하는 영화 제작 소식을 볼 때마다, 나랑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런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게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조차 안 된다.

여전히 남는 불안함

지금도 가끔 오디션 정보를 찾아보지만, 여전히 확신은 없다. 내가 하는 노력이 언젠가 빛을 발할지 아니면 그저 나이만 먹는 과정일지 종잡을 수가 없다. 연기학원을 등록해서 다니는 게 답일까, 아니면 그냥 내 연기를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게 답일까.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누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에이전시 문을 두드리던 그날, 그 적막했던 사무실 복도에서 느꼈던 묘한 긴장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결국 답은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너무 막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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