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직접 고르는 공연이라니
며칠 전 창원에서 열린 ‘클래식 흑백대전’이라는 공연을 보고 왔다. 제목부터 흑팀 현악과 백팀 관악이 붙는다고 해서 좀 호기심이 생기더라. 보통 클래식 공연이라고 하면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졸음을 참으며 감상하는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특이하게도 객석의 선택으로 공연의 흐름이 바뀐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관람료가 전석 1만 원이라 부담도 없었고, 마침 주말에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네이버 예약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이게 생각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거다. 내 한 표가 공연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게 뭐라고, 괜히 클래식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나 싶어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들었다.
입장하자마자 마주한 QR코드
공연장에 들어서니 티켓 확인보다 QR 출석체크가 먼저였다. 요즘은 이런 식으로 관객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흔한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게 나중에 투표용으로 쓰이는 건가 싶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입장 팔찌를 나눠주는 건 아니었지만, 번호표 같은 걸 들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내가 좀 늦게 왔나 싶어서 서둘러 자리를 찾았다. 7세 이상 관람가라 그런지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객도 꽤 보였다. 나는 좀 조용히 감상하고 싶었는데, 옆자리 아이가 계속 다리를 흔드는 바람에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만 어쩌겠나, 다들 즐기러 온 건데.
흑팀 현악과 백팀 관악의 묘한 신경전
공연이 시작되니 확실히 일반적인 연주회랑은 달랐다. 사회자가 나와서 어느 팀 곡을 먼저 들을지, 혹은 어떤 분위기의 곡을 할지 관객들에게 박수나 스마트폰 투표로 의견을 물었다. 사실 현악기가 주는 부드러운 선율을 좋아해서 내심 현악 쪽을 밀어주려고 했는데, 막상 관악의 그 웅장하고 쨍한 소리가 터져 나오니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1만 원짜리 공연이라고 해서 가볍게 봤는데, 생각보다 연주자들의 열기가 엄청나서 나중엔 나도 모르게 어느 팀이 이길까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이게 경쟁이 붙으니 연주자들도 평소보다 더 힘을 줘서 연주하는 게 눈에 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던 투표 시간
그런데 투표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을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투표하느라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니 공연 집중도가 조금 흐트러지는 기분도 들었다. 나 역시 투표 창을 띄우느라 곡의 도입부를 제대로 못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관객 참여형 공연이라는 게 처음엔 신선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음악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 ‘누가 이기나’ 하는 게임에 더 집중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현악 곡이 나올 때마다 엄청나게 박수를 치시는데, 백팀 관악이 나올 때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걸 보고 속으로 ‘저분은 확실히 현악 파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고민
공연이 다 끝나고 나오는데, 사실 누가 이겼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분명히 사회자가 발표를 했는데, 퇴장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공연장 밖으로 나오니 창원의 밤공기가 꽤 시원했다. 돌아오는 길에 킨텍스에서 한다는 다른 콘서트 광고를 봤는데, 거긴 또 어떻게 진행되려나 싶었다. 이런 공연은 확실히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럿이 가서 내 편을 만들어 투표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비슷한 공연을 또 갈 일이 있다면, 그때는 좀 더 확실하게 한 팀을 정해서 작정하고 응원해볼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음악만 듣고 올까 고민이 된다. 뭐, 딱히 결론은 없다. 그냥 공연 보는 내내 옆사람 눈치를 보며 투표 버튼을 눌렀던 게 은근히 기억에 남을 뿐이다.

투표하느라 스마트폰만 보다가 도입부를 놓치는 건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한 적 있어요.
관객 투표 때문에 곡 분위기가 바뀐다는 게 흥미로운 관찰이네요. 제가 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더 공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