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 친구랑 킨텍스에서 열린 가을 콘서트에 다녀왔다. 예전 같으면 그냥 음악 듣고 오는 게 전부였을 텐데, 이번에는 입구에서부터 무슨 ‘ESG 캠페인’이라고 하면서 제로웨이스트 키트를 나눠주길래 엉겁결에 하나 받아왔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스가 서너 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뒤에 붙어서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안 받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 줄을 선 게 컸다.
구성품을 뜯어보니 묘하게 고민되는 것들
집에 와서 비닐봉지가 아닌 종이 가방을 열어보니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그리고 삼베 수세미가 들어있었다. 일단 구성은 깔끔했다. 가격을 대충 따져보니 온라인 제로웨이스트 샵에서 사면 한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 할 법한 세트였다. 그런데 막상 꺼내 놓고 보니 이걸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좀 막막했다. 당장 집에 칫솔이 멀쩡히 있는데 대나무 칫솔을 뜯자니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들고, 고체 치약은 왠지 거품이 잘 안 날 것 같아서 계속 서랍 속에 넣어두게 된다. 이게 친환경이라고는 하는데, 막상 내 일상에 들여놓으려니 생각보다 귀찮은 구석이 많다.
탄소중립 실천이라는 무거운 이름표
행사장의 취지는 이해한다. 요즘은 기업들도 그렇고 이런 대형 행사들도 ESG니 탄소중립이니 하면서 뭔가 보여주기식 활동을 많이 하니까. 킨텍스 입구에서 안내해주던 분들이 목에 걸고 있던 명찰도 다 재생지 느낌이 났다. 나름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집에 가져온 이 키트가 정말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행사장에서 일회용 컵을 쓰지 말라고 강하게 독려하거나, 재활용 시스템을 확실하게 구축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으로 나눠주는 물건들은 결국 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나중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10월 축제 시즌의 흔한 풍경
10월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축제 소식이 정말 많다. 경기도 곳곳에서 열리는 행사들만 봐도 이제는 이런 ESG 키트를 나눠주는 게 거의 공식처럼 굳어진 것 같다. 예전에는 텀블러나 에코백을 나눠줬다면 요즘은 더 작고 ‘제로웨이스트’스러운 물건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문제는 이런 굿즈들을 모으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사실 집에 이미 에코백은 수십 개나 있다. 이번에 받은 키트도 솔직히 말하면 예뻐서 받은 거지, 내가 정말 제로웨이스트 삶을 살고 싶어서 줄을 선 건 아니었다. 같이 간 친구는 수세미를 바로 쓰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마 몇 달 뒤에 이사 갈 때나 꺼내 보지 않을까 싶다.
계속되는 의문과 정리되지 않는 서랍
지금 내 서랍 한구석에는 콘서트장에서 받아온 키트가 상자째 그대로 있다. 버리자니 환경 생각해서 만든 건데 찜찜하고, 쓰자니 기존에 쓰던 제품들이 멀쩡해서 손이 안 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이게 정말 친환경적인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소비 유도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공연 자체는 좋았는데, 손에 들려준 이 키트가 오늘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냥 다음번에는 아무것도 안 받고 즐기다 올 수 있는 행사가 더 편하게 느껴질 것 같다. 이런 키트들이 정말 우리 생활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킨텍스의 그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사람들 소음 속에 섞여 있던 묘한 피로감이 오늘 밤까지 이어진다.

음성인증 제품이 이렇게 나눠주는 방식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내용물 중 재사용 가능한 텀블러가 꽤 있어서 좋았어요.
수세미를 바로 쓰겠다는 친구와는 달리, 저는 물건이 쌓이는 게 늘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