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에 갑자기 혜화역으로 향했던 이유
매번 주말마다 뻔하게 흘러가는 데이트 동선에 약간 싫증이 났던 터라, 오랜만에 대학로 연극공연이나 한번 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옛날 기억에는 그냥 혜화동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연극 티켓을 할인해서 파는 사람들이 널려 있어서 즉흥적으로 표를 사서 들어가곤 했었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대다수의 인기 있는 공연들은 모바일로 미리 예매를 해두지 않으면 아예 매진되거나 구석진 자리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뒤늦게 깨달았다. 포털 사이트에서 혜화역 연극 순위를 대충 훑어보다가 마침 평이 나쁘지 않아 보이고 코믹 호러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오! 나의 귀신님’이라는 연극을 발견했다. 마침 시간대도 적당하길래 주말 낮 시간에 맞춰 예약을 진행했다. 요즘 일반 영화관 티켓 가격도 인당 만 오천 원이 훌쩍 넘어가는데, 대학로 소극장은 주말 할인을 받아서 인당 17,000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가성비는 확실히 괜찮아 보였다.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오니 주말 오후 특유의 어수선하고 활기찬 공기가 확 느껴졌고, 마로니에 공원 앞은 여전히 버스킹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옛날 대학 시절에 자주 오던 골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루또 소극장 매표소 앞에서의 작은 혼선
지도를 켜고 목적지인 아루또 소극장을 찾아가는데, 이 근방 골목길이 워낙 좁고 복잡해서 길을 살짝 잘못 들었다.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오르막길 초입 부근에 위치해 있었는데, 간판이 생각보다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근처 골목을 두 번이나 뱅글뱅글 도는 바람에 진이 좀 빠졌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현장 매표소에서 실물 티켓으로 선착순 교환을 해준다는 안내를 봤기에 서둘러 갔음에도 이미 매표소 앞에는 몇몇 커플들이 줄을 서 대기하고 있었다. 골목 한편에 마련된 허름한 부스 형태의 매표소에서 예매 내역을 보여주는데, 직원이 내 예약자 이름을 잘못 받아적었는지 명단에서 한참을 찾지 못해 삐걱거렸다. 시스템상 오류인지 내 결제 내역이 즉시 연동되지 않았던 모양인데, 내 뒤로 대기 줄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괜히 눈치가 보이고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확인을 마쳐 티켓을 건네받았으나, 배정된 자리는 맨 앞줄의 구석자리였다. 이게 선착순 배정 때문인지 아니면 예매 시점 때문인지 정확히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지만,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그냥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지하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대형 공연장과는 전혀 달랐던 소극장 내부의 좁은 자리
계단을 따라 지하로 한 걸음씩 내려갈 때마다 대학로 소극장 특유의 그 퀴퀴하고 습기 찬 냄새가 훅 끼쳤다. 지하실 냄새와 오래된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특유의 공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묘한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답답함을 유발했다. 극장 내부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협소했다. 등받이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붉은색 플라스틱 간이 의자들이 좁은 간격으로 빽빽하게 깔려 있었는데, 옆 사람과 어깨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만 했다. 예전에 TOM 1관이나 조금 규모가 있는 다른 대학로 공연장에 갔을 때는 좌석 간격이나 의자 상태가 이 정도로 좁진 않았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 소극장은 공간 활용을 극한으로 해둔 것 같았다. 키가 아주 큰 편도 아닌데도 앞좌석에 무릎이 닿을락 말락 해서 공연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허리와 무릎에 묵직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에어컨이 윙윙거리며 세게 돌아가 실내 온도는 시원했지만, 사방이 막힌 좁은 지하 공간에 수십 명의 사람이 밀집해 있으니 심리적으로 약간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은 어쩔 수 없었다.
코믹과 호러 사이에서 정신없이 흘러간 90분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 조명이 일시에 꺼지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코믹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답게 초반에는 가벼운 만담과 다소 유치하지만 웃음이 터지는 상황극들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마침 맨 앞줄 구석에 앉았던 터라 무대 위 배우들의 격렬한 몸짓과 숨소리, 심지어 땀방울이 튀는 모습까지 코앞에서 보게 되어 몰입감 자체는 아주 뛰어났다. 극의 흐름상 수시로 암전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정말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귀신 분장을 한 배우가 관객석 사이로 튀어나와 비명을 지르게 유도했다. 바로 옆에 앉은 관객이 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나는 무대 위 귀신보다 옆 사람 목소리에 더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극장 연극의 묘미라지만 배우들이 수시로 관객석을 향해 장난을 걸고 리액션을 요구하는 바람에, 나한테 순서가 돌아올까 봐 공연 중반부터는 필사적으로 배우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무대 바닥 구석으로 시선을 돌려 모르는 척을 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지르며 열연을 펼치는 열정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흐름이 갑작스러운 로맨스와 억지 감동으로 치달으면서 극의 집중력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연극이 끝나고 혜화동 거리를 나오며 든 생각
약 90분가량의 러닝타임이 모두 지나고 커튼콜이 시작되었을 때, 박수를 열심히 치면서도 머릿속에는 얼른 이 좁고 딱딱한 의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리에 일어서자마자 한쪽 다리가 찌릿하게 저려와서 골목길로 나오는 길에 연신 발을 굴러야 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져서 사방이 캄캄해졌고, 화려하게 켜진 상가 조명들 사이로 혜화동 거리는 낮보다 훨씬 붐비고 있었다. 인당 17,000원이라는 금액을 고려하면 배우들의 고생과 몰입도는 만족스러웠으나, 좁은 공간에서 너무 오랫동안 째지는 비명과 큰 소리에 노출된 탓인지 관람이 끝나고 나니 뒷목이 뻐근하고 가벼운 두통이 밀려왔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방금 본 연극의 스토리에 대해 동행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 재미있게 느꼈던 지점이 미묘하게 달라서 대화가 아주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극 자체가 엉망이었다기보다는 내 낡은 체력이 소극장 특유의 좁은 환경과 높은 텐션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한 탓인 듯싶다. 나중에 다시 혜화동 쪽에서 연극을 예매하게 된다면, 그땐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좌석이 제대로 갖춰진 비교적 규모가 있는 공연장을 우선적으로 찾아보는 게 몸이 편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다.

좁은 의자 때문에 공연 시작부터 허리랑 무릎이 아플 줄은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