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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순위만 보고 골랐던 연극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느껴졌던 날

대학로 연극 순위 사이트를 보며 고민하던 시간

주말에 혜화에 갈 일이 생겨서 급하게 연극을 하나 예매하려고 했다. 사실 연극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어서 무작정 대학로 연극 예매 순위를 검색했다. ‘오백에 삼십’이나 ‘김종욱 찾기’ 같은 건 하도 유명해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터라, 웬만하면 순위권에 있는 검증된 걸로 보자는 마음이 컸다. 근데 막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티켓 가격대를 보니 1만 5천 원에서 3만 원 사이로 생각보다 폭이 넓었다. 굳이 할인 쿠폰을 적용하려고 복잡한 인증 절차를 거치는 게 귀찮아서 그냥 대충 중간 가격대인 2만 2천 원짜리 티켓을 결제했다. 이게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제일 위에 떠 있는 거, 후기 많은 거 위주로 골랐으니까 큰 실패는 없겠지 싶었는데 연극이라는 게 참 취향을 많이 타는 거라는 걸 그때 다시 실감했다.

좁은 소극장에서의 두 시간

혜화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소극장에 도착했다. 요즘 대학로에 소극장이 하나둘씩 사라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가보니 입구가 정말 좁고 낡아서 살짝 당황했다.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대기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마로니에 공원을 서성이다가 들어갔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의자가 정말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옆 사람과 거의 어깨가 닿을 정도였는데, 이게 대학로 연극의 낭만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나처럼 덩치가 좀 있는 사람한테는 고역이다. 옆자리에 앉은 분이 가방을 내 발치에 놓으면서 ‘죄송해요’ 하는데, 나도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무대 위 배우들의 목소리는 생생하게 들렸지만, 내 다리는 이미 저려오기 시작했다.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길을 잃다

연극은 코미디였는데, 배우들이 정말 쉴 새 없이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녔다. 중간에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리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나는 제발 나를 부르지 마라 속으로 백 번은 빌었다. 다행히 앞줄에 앉은 활발해 보이는 커플이 불려 나갔다. 그 커플은 꽤 잘 호응했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도 ‘저런 게 정말 재밌나’ 싶어 마음이 복잡했다. 예전에 대구에서 봤던 유명 뮤지컬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유독 오늘따라 공연이 길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배우가 관객석으로 내려와서 사탕을 나눠주는 타임이 있었는데, 나한테는 왜 안 오는지 내심 서운하면서도 또 막상 받으면 어색할 것 같아 묘하게 안도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다 지고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옆에 있던 친구가 ‘어땠어?’라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재밌었다고 말하기엔 내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팠고, 재미없었다고 하기엔 배우들이 너무 땀을 흘리며 열연하는 걸 직접 눈앞에서 봤기 때문이다. 결국 ‘나쁘지 않았어’라고 뭉뚱그려 대답하고는 낙산공원 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낙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는데, 공연의 내용보다는 아까 극장에서 옆 사람과 부딪혔던 어깨의 감각이 더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다음번에 혜화에 올 때는 굳이 순위 높은 연극을 찾기보다 그냥 카페에 앉아서 책이나 읽거나, 아니면 좀 더 여유 있는 공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음에 또 친구가 연극 보자고 하면 엉겁결에 또 예매 순위를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이 피로감이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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