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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세미원에 연꽃 조명 보러 갔다가 모기만 잔뜩 물리고 돌아온 날

주말에 갑자기 경의중앙선을 타고 양평으로 출발했던 이유

평소에 주말에는 집에서 누워만 있는 편인데 그날은 왠지 몸이 찌푸둥해서 서울근교당일치기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마침 SNS를 보다가 경기도 양평에 있는 세미원에서 한여름 밤에 야간 개장을 하고 은하수조명 같은 일루미네이션을 켜준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마침 8월 중순이라 한낮에는 돌아다니기 힘들어도 해 질 무렵에 맞춰서 가면 바람도 불고 괜찮을 것 같았다. 운전을 해서 가자니 주말 양평 가는 길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이 뻔히 보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기차여행추천 코스로도 종종 언급되는 경의중앙선을 타고 양수역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왕십리역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하지만 주말 경의중앙선 특유의 불규칙하고 긴 배차 간격 때문에 승강장에서만 이미 20분 넘게 시간을 허비하면서 출발부터 살짝 지치기 시작했다.

양수역에서 세미원 입구까지 걸어가며 마주한 생각보다 강렬한 더위

양수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나오니 오후 4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휴대폰 지도를 켜고 세미원 입구까지 가는 길을 찾아보니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다. 이 정도 거리면 굳이 버스를 타지 않아도 충분히 걸을 만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막상 아스팔트 길로 나서니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갇혀 있어서 숨이 턱 막혔다. 그늘막도 없는 좁은 인도 위를 걸어가는데 땀이 이마에서부터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길가 편의점에 들러 급하게 생수 한 병을 사서 마셨지만 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8월의 여름축제는 낮보다는 해가 완전히 진 다음에 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겪으며 후회막심한 걸음걸이로 세미원 매표소를 향해 걸어갔다.

성인 기준 오천 원의 입장료와 낮 시간대 연꽃밭의 미지근한 풍경

매표소 앞에 다다르니 매표 기계와 창구가 보였다. 입장료는 일반 성인 기준으로 5,000원이었다. 비싼 금액은 아니었지만 막상 지갑에서 돈을 지불하려니 그만큼 볼거리가 있을까 하는 쪼잔한 걱정이 들었다.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연못 위로 커다란 연잎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내가 방문한 시기가 8월 중순을 넘어가던 때라 그런지 생생하게 피어 있는 연꽃보다는 시들어서 갈색으로 변한 잎사귀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사진으로 보던 화사하고 분홍빛 가득한 풍경과는 거리가 먼, 다소 빛바랜 초록색 연못이 넓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물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훅 끼쳐서 오랫동안 서서 감상하기가 조금 곤란했다.

그늘 하나 없는 두물머리 흙길과 비교하며 느꼈던 소소한 피로감

세미원 안쪽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강을 가로지르는 배다리가 나왔고 이를 건너면 바로 두물머리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 가봤던 두물머리는 별도의 입장료가 없는 대신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이 정말 없어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에 비해 세미원은 정원처럼 가꾸어져 있어 중간중간 큰 나무 밑 벤치나 그늘막이 마련되어 있는 점은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더위에 지쳐버린 탓에 두물머리의 명물이라는 핫도그를 먹으러 그 땡볕 아래 흙길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배다리 중간쯤에서 강바람만 대충 맞다가 다시 세미원 안쪽 쉼터로 되돌아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관람객들도 지친 기색으로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에 댄 채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은하수 조명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며 근처 카페에서 보낸 애매한 시간

내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은 야간에 불이 들어오는 조명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밤 조명이 켜지려면 아직 한 시간 반 이상을 더 기다려야 했다. 세미원 내부 산책로는 이미 다 돌았고, 더 이상 더위 속에서 서성거릴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일단 세미원 밖으로 나와 근처 길가에 보이는 카페 중 한 곳으로 피신했다. 관광지 골목이라 그런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6,000원이 넘어가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 아래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니 살 것 같았지만, 동시에 조명 몇 개 보겠다고 이 낯선 동네 카페에서 굳이 돈을 쓰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스스로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냥 지금이라도 다시 양수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밤이 되어서야 켜진 불빛들을 보며 들었던 복잡한 생각들

저녁 7시 반이 가까워지자 마침내 하늘이 어두워지고 공원에 불빛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입구로 가서 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니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어두운 연못 사이로 은하수조명들이 길을 밝히고 있었고 연꽃 모양의 대형 발광다이오드 조형물들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확실히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일루미네이션 자체는 예뻤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인공적인 불빛들이 가득한 느낌도 들었다. 자연 조망을 즐기러 온 것치고는 다소 인위적인 테마파크 같은 인상이 짙었다. 무엇보다 불빛이 켜지자마자 어디선가 날아온 산모기들이 극성을 부려 다리와 팔을 연신 긁어대야 했다. 결국 모기약도 챙겨오지 않은 탓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쫓기듯 밖으로 나왔다. 양수역으로 다시 걸어가며 다리에 물린 모기 자국을 긁다 보니, 무작정 더운 여름밤에 나들이를 감행했던 선택에 씁쓸한 기분만 남았다.

“양평 세미원에 연꽃 조명 보러 갔다가 모기만 잔뜩 물리고 돌아온 날”에 대한 4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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